금식 넷째 주 수요일
(이사야 49:8-15 및 요한복음 5:17-30)
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일치된 예수님의 순종과 겸손의 삶!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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억울하고 참으로 감사하지 못한 일들이 오늘 복음에서 은밀히 행해졌습니다. 한낱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의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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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것은 하나님과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. 자신의 행복과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보내신 메시아이시며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과 감사로 영접하고 영접할 수 없는, 참으로 무력한 사람들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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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각해보니 유대인들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이고자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. 딱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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① 신성모독: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인간에 불과했지만,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처럼 말씀하시며 자신이 독생자임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. 특히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, 늘 예수님을 보던 고향 사람들은 백 번을 깨워도 예수님의 메시아적 본성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. 그 결과 그는 신성 모독을 저질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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② 안식일 폐지: 예수님은 지극히 인간적이시고 지극히 자연스러우셨다. 본질적으로 어색하거나 딱딱한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. 안식일을 생명으로 삼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는 너무 웃겼을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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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마도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부터 그러셨던 것처럼 안식일 준수를 어기셨습니다.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만 택하셨습니다. 안식일에 그분과 그분의 제자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 밀알을 체질합니다. 다른 날도 많지만 안식일에는 수십 년 동안 만성질환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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안식일을 목숨보다 귀히 여겼던 유대인들 눈에는 그런 예수님이 좋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.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는 힘이 넘쳤습니다.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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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예수는 누구였습니까?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지혜의 왕이셨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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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결정적인 수난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. 백성들이 아직 이곳 저곳으로 피신하고 있을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선포할 때였습니다. 때리고 떨어뜨리기를 잘하셨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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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나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삶은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순종과 겸손의 삶이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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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. 나는 내가 들은 것만 판단한다. 그래서 내 판단이 옳았다. 나는 내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노라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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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승국 스테파노, 살레시안


